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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 답사

다랭이 논

 

자연 거스르지 않고 사람과 조화 이뤄

눈물겨운 노동의 유산, 이젠 문화재와 관광지로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은 망망대해와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을 이룬 해안도로  돌다보면,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급격한 경사를 이룬 소울산(망산) 응봉산 골짜기에 옴쏙하니 들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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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마을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승화된 계단식 다랭이 논, 억겁의 세월 바닷물에 말끔히 씻겨 눈처럼 새하얘진 바위와 쪽빛 바다가 이룬 풍광이 정말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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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 우면산 산사태는 마구잡이식 개발로 인명피해를 일으켰지만 가천 마을 다랭이 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억수 같은 비와 태풍에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예술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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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마을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인간과 잘 조화를 이룬 최고의 계단식 다랭이 논. 주민들은 바다로 내리 지르는 소울산 응봉산 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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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미터 이상의 논 석축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하여 삿갓배미라 부르는 작은 논과 실한 세마지기(이곳의 단위로는 240평정도) 논까지 100층이 넘는 논배미들이 층계를 이룬 모습은 참말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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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산, 응봉산을 울타리 삼아 터전을 만든 가천마을 전경

 

천수답이 아니더라도 위에서부터 물을 대야 고루 물을 댈 수 있다는 슬기로 척박한 비탈에 석축을 쌓아 논을 만들고, 그 석축은 한 뼘 이라도 더 땅을 넓히려는 주민들의 집념으로 안으로 기운 것 없이 바짝 곧추 섰으며 그 석축을 따라 농군의 심성을 닮은 듯 유연한 곡선을 그린 논두렁이 이룬 장관은 한 폭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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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 안에 있는 바위가 돌을 들어내 경지를 만들던 주민들의 노고를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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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고단했던 삶을 보여주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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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골목길

 

영조 27년(1751) 현령이었던 조광징의 꿈에 백발을 휘날리며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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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수바위 마을에 큰 상징성을 같고 있다.

 

현령이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 꿈에 본 것과 똑 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남자의 성기를 닮은 형상인 높이 5.8m, 둘레1.5m인 거대한 수바위와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인 높이 3.9m, 둘레2.5m인 암바위가 나왔다.

 현령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미륵불로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미륵불이 발견된 음력 10월23일 자정이면 생선이나 육고기 없이 과일만 차려 불교식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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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랭이 논처럼 돌을 쌓아 올린 집터 높이가 10미터 나된다.

 

암수바위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어선들이 고기잡이를 나갈 때 예를 올리는 용왕신이며 불임여성, 병자가족,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이 기도하기 위해 찾는 민간신앙 처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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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랭이 논 처럼 석축을 쌓아 만든 계단식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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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400년 된 느티나무가 골목 마다 서 있다.

 

조선시대 남아선호사상이 나은 성기숭배의 대상물에서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 탄압받던 민초들이 해방된 세상을 기원하던 미륵불인 가천 암수바위는 남해의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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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가파른 골목길

 

아직도 참게가 살고 있는 맑은 개울이 마을을 가로 질러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에 태고부터 파도에 씻겨 하얘진 화강암 바위들이 눈부신 가천해안의 절경 또한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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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 다랭이 논

 

가천마을을 들어서기 전 홍현이라는 작은 마을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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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곳에 소라가 많이 나서 소라를 잡아 생활한다고 하여 라라 라고 불렀다고 하며, 조선시대 말 행정구역 개편시 무지개 고개의 재가 있다고 하여 홍현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다랭이 논도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워 들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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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윤순영의 자연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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