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영장류에만 있는 추론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난 아프리카의 회색앵무. 사진=산드라 미콜라쉬
이솝 우화에 영리한 까마귀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목마른 까마귀가 물이 반쯤 찬 물단지를 발견했지만 부리가 물에 닿지 않았다. 생각 끝에 까마귀는 돌멩이를 단지 안에 집어넣어 수면이 올라오게 한 다음 물을 맛있게 먹었다.
실제 까마귀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음은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단지 안에 물과 톱밥을 담아놓고 그 위에 먹이를 올려놓았을 때 물 단지를 고르고, 또 잔돌과 큰 돌 가운데 큰 돌멩이를 넣어야 수위가 빨리 오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 이솝우화의 영리한 까마귀(왼쪽)는 실제로 뉴칼레도니아에서 발견됐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자들은 까마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아이들에게 해 보았다. 수면이나 톱밥 표면에 먹이 대신 표지를 올려놓고 이를 꺼내오면 스티커와 바꿔주는 식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4~7살 아이들은 5번쯤 시행착오 끝에 문제를 해결했다. 까마귀와 비슷한 능력을 보인 것이다. 8살부터 아이들은 지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져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단지에서 표지를 꺼냈다.
그렇다고 7살 아이와 까마귀의 지능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돌을 집어넣을 때 수위가 올라가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않도록 조작을 한 실험 장치에서 까마귀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다른 실험과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 책임자인 니콜라 클레이튼은 “까마귀는 무언가 명백하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면 배우지 못하는 반면 아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차이”라고 밝혔다. 아이에겐 세상에 관해 배우는 게 일이라는 것이다.
» 소리를 단서로 먹이가 든 컵을 찾아내는 실험을 하고 있는 회색앵무. 사진=산드라 미콜라쉬
추론하는 능력은 사람과 영장류에서만 발견되는 특성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회색앵무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음을 실험으로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동물행동학자들은 회색앵무를 상대로 상자에 먹이를 넣은 채 흔들었다. 상자에선 소리가 났고 이어 먹이를 확인했다. 다음에 먹이를 넣은 상자와 빈 상자를 차례로 흔들면서 반응을 관찰했다. 앵무는 빈 상자를 흔들면 어김없이 나머지 다른 상자를 찾았다. 하나가 비어있다면 다른 것은 차 있음을 추론하는 것이다.
» 회색앵무의 추론 실험. 사진=산드라 미콜라쉬
이처럼 단서뿐 아니라 ‘단서 없음’으로부터도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은 사람과 유인원에게서만 보고돼 있으며, 사람은 3~4살이 돼야 그런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실험에서 회색앵무는 3살 아이 수준의 성적을 거뒀다.
논문의 제1 저자인 크리스찬 쉬뢰글은 논문에서 “이 연구는 회색앵무가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그러나 연상학습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출처;한겨레신문(조홍섭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