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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방

선비와소녀/한국야화

 

 

젊은 선비가 복숭아꽃 만발한 화창한 봄날 길을 걷다가, 갈증이 나서 인가를 발견하고, 물 한 그릇 청할까 하여, 그 집 대문을 두드렸다. 한데 갓 피어난 복사꽃처럼, 화사한 얼굴의 소녀가 녹차를 대접하며 건네주다, 손끝이 닿는 순간, 둘은 화들짝 놀란다. 선비는 그 소녀에게 반하였고, 소녀는 선비의 모습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녹차를 한 잔 마시고, 선비는 아쉬움을 남기며, 그 소녀에게서 떠나갔다.

그 후 선비는 계속 소녀 생각을 하였으며, 다시 봄날이 된 1년 후, 청명 날, 소녀의 집을 찾아갔으나, 소녀와 그의 가족들은 출타 중이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선비는 시 한수를 지었다

 

去年今日此門中 작년 오늘 이 집 앞을 지날 때

人面桃花相映紅 여인의 얼굴과 복사꽃이 서로 붉게 비췄는데

人面不知何處去 어여쁜 그 얼굴 어디로 가고

桃花依舊笑春風 복사꽃만 예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네

 

  선비는 그 소녀에 대한 상사병으로 몸져 누웠다가 일어나, 몽유병 환자처럼 이곳저곳 헤매다 그 소녀의 집에 다다라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 때 한 노인이 나와 그가 소녀가 녹차를 주었던 사람임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데 “이 무정한 사람아 한루만 먼저 왔었더라면 죽지 않았을텐데..”하였다. 그리고 들어본 즉, 소녀는 1년 전 선비를 만나고 떠나보낸 날부터, 수심에 잠긴 얼굴로 한 숨을 쉬며 보내다가, 얼마 전 청명 날 선산에 다녀와서, 대문에 시 한 수가 걸려있기에 읽어보더니, 놀라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 지난 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세상을 떠났지만, 장사를 치루지 않아 방에 있다는 소녀를 보고 너무나 애처럽고 안타까워 방안으로 들어가서 누워있는 소녀의 얼굴을 가까이 보니, 백짓장 같은 소녀의 얼굴에 갑자기 홍조가 띄더니, 입술이 열리고, 숨통이 트이며, 자꾸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소녀가 부르던 사람은 바로 그 선비였던 것이다. 그 날 두 사람은 감격적인 재회를 하고, 혼인을 하고, 아들 딸을 낳고,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한국 전래 야화 및 북한 작가 홍석중의 <황진이> 소설 중 한 대목으로도 나온다고도 한다.

 

출처;한국야화집의 정몽주녹사인 김경조와 양씨부인의 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