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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자료방

일본 이케다, 인스턴트 라면 박물관 탐방기

 

쫄깃한 면발에 얼큰한 국물
단 2분이면 스피디하게 맛볼 수 있는 환상의 맛

평소 컵라면을 즐기는 필자에겐 ‘컵라면’에 얽힌 추억도 꽤 많은 편이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외출하셨을 때 몰래 끓여 먹던 금단의 맛을 잊을 수 없고, 야자를 마치고 친구와 편의점에 들러 설익은 면발을 후루룩 들이키던 고교시절도 떠오른다.

유학하며 아프거나 입맛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도 바로 ”얼큰한 컵라면 국물”이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조리해 먹기 쉽고, 한 끼 식사로도 충분히 맛깔나서 언제나 사랑해마지 않는 컵라면.

그런데 정작 이 고마운 컵라면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정보 외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는데, 이번 오사카 여행을 앞두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정말 우연히 ‘인스턴트 라면 발명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설의 라면왕, 안도 모모후쿠(1910 ~ 2007)

그는 바로 일본 닛신 식품의 창립자 ‘안도 모모후쿠’

호기심이 생겨 신문 기사까지 검색해 읽어보았는데, 그의 발명가 정신과 드라마틱한 인생역전 스토리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참 운이 좋게도 그의 일생을 담은 박물관이 일본 오사카 부(部)의 이케다 시(市)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되어 이번 간사이 지방 여행 중 짬을 내 방문해보았다.

라면왕을 만나러 가는 길

오사카 시내 중심에서 이케다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한큐 우메다 역에서 타카라주카 라인 전철을 타고 약 20분 후 이케다 역(Ikeda Station)에서 하차.

마스미초(Masumicho) 방면 출구로 나와 누들로드를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인스턴트 라면 박물관’에 도착한다.

이케다 시는 이번에 처음 찾아가 봤는데, 꽤 조용한 곳이었다.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고나니 금세 박물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외관상 박물관의 규모가 제법 커 보여 입장 전부터 조금 놀랐다. 하긴 ‘인스턴트 라면’의 발견이 인류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못해도 이 정도 규모는 되야지 싶다.

참고로, 요코하마 시에는 이보다 더 규모가 큰 초대형 인스턴트 라면 박물관이 있다고 하니 도쿄 방문 시엔 그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긴 ‘컵라면 터널’

드디어 기대했던 라면 박물관으로 들어서본다. 무료 입장이라 부담은 없다.

입구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라면 터널이 펼쳐진다. 온세상 라면이란 라면은 이곳에 다 모아놨나 싶을 정도로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든 수준이다.

그동안 일본의 닛신 식품에서 출시한 컵라면이 제작 연도별로 디스플레이되어 있다고 하는데, 고개를 젖혀 한참을 올려다봐도 ‘라면의 행렬’엔 끝이 없다.

전시관 벽면에 흐르는 라면의 역사를 따라 한참 동안 눈으로 라면을 무한흡입. 주변 일본인 관람객들도 꽤나 진지하게 기록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전통을 소중히 기억하려는 일본인 특유의 마음가짐은 때론 질투가 날만큼 세심해 보인다.

이번엔 잠시 과거로 돌아가 ’짜릿한 발견의 순간’을 체험해본다.

세계 최초 인스턴트 라면이라는 ‘치킨 라면’이 탄생한 작은 오두막의 주방에서 최초 발견자의 벅찬 희열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물론 과거의 장소를 재현해놓은 세트에 불과했지만,이곳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안도 모모후쿠의 혼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평범한 식기조차 어쩐지 특별해 보였다.

잠시 그의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종전 후 많은 일본인들이 전쟁에서 패망 후 굶주리던 때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을 보고 집에서도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젖은 면을 말려 팔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아내의 튀김 요리를 보곤 힌트를 얻어 면을 튀겨 말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하는데, 1958년 세계 인류는 그렇게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후 안도 모모후쿠는 1971년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까지 개발하게 됐고, 닛신식품은 승승장구하며 단번에 매출 2조 원대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연간 1,000억 개에 가까운 라면이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100세 가까이 장수한 그의 일생만큼이나 세계인의 라면 사랑도 꽤나 길게 이어질 듯 싶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