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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신비

매미의우화/탄생의 순간

껍질 나오기까지 3시간, 몸 굳기까지 10시간
인고의 4년 헛될라 세찬 비에도 아랑곳 안해 

순간순간 생명의 신비 

“맴맴맴 미~”
 참매미는 무더운 여름을 알리는 전령이다. 요즘엔 너무 많고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도 울어 어렵게 든 잠을 깨운다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참매미도 몇 주일 안에 짝을 찾고 생을 마감하는 일정이 급하다. 참매미의 울음이 듣는 이에 따라 정겹거나 시원하기도 하지만 애절하기도 한 까닭이다. 

a1.jpg » ▶땅 속에서 나온 참매미 애벌레가 우화를 위해 나무위로 올라가 나무껍질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다.(위) ▶▶탈피 전후 모습(가운데) ▶▶▶탈피 전후 모습 다중촬영.  
사람도 고양이도 직박구리도 생명 노리는 적
 지난 7월20일부터 경기도 김포에서 참매미의 탈피 과정을 지켜보았다. 집 주변에 들어선 공원은 20여 년이 돼 제법 숲이 울창하다. 나무 아래 적당히 낙엽이 썩어 매미 유충이 흙을 뚫고 나오기 좋아서인지 매미의 우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참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나와 우화하고 난 껍질(탈피 각)은 흔히 보지만 매미 애벌레가 탈피하는 과정을 보는 건 쉽지 않다. 한밤에 이뤄지는 이 긴 탄생의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7월23일 참매미 애벌레의 탈피가 시작된 지 1시간 반쯤 지난 9시40분께 장맛비가 세차게 내린다. 비가 내리면 중단될 줄 알았던 탈피가 맑은 날보다는 느리지만 계속 진행된다. 한시가 급한 애벌레들은 여기저기서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탈피를 위해 나무 위로 기어올랐다.

 7월28일 예상치 못했던 천적이 출현했다. 그동안 공원에서 고양이 서너 마리가 배회하며 촬영 장소로 접근하여 대수롭지 않게 쫓아 버리곤 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오전 2시께 나타난 길고양이가 탈피한 지 얼마 안 돼 날지 못하는 매미를 나무 위로 뛰어올라 낚아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나무마다 살피며 사냥하는 모습이 능수능란하다. 매미가 땅속에서 나와 나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 탈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a4.jpg » 밤마다 나타나 상습적으로 매미 사냥에 나서는 고양이.(위) 여름철 매미를 주식으로 사냥하는 직박구리. 
 몸집이 통통한 매미는 많은 동물에게 맞춤한 간식거리다. 낮 동안 직박구리는 매미 전문사냥꾼이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살피고 나는 매미를 쫓아가 잡기도 한다. 취약한 탈피를 밤중에 하는 건 이런 천적을 피하려는 것인데, 뜻밖의 다른 천적이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이후에도 땅바닥과 나무 위에서 애벌레와 성충을 가리지 않고 사냥했다.
 8월1일 누군가 손전등을 비추며 매미를 잡는다. 이 밤중에 곤충 채집을 하나? 그의 손길은 바빴다. 탈피하려는 애벌레와 탈피 중인 애벌레, 성충을 가리지 않고 마구 잡아댄다. 왜 그리 잡느냐고 물었더니 “열대어 먹이로 쓴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도 이제 매미의 천적 대열에 접어든 것이다. 채집 통에는 60여 마리의 매미가 들어있었다. “열대어 먹이 값이 얼마나 된다고 한두 마리도 아니고 살려고 나온 생명인데 너무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매미가 시끄럽다는 등 우물쭈물하며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a2.jpg »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탈피 각이 세로로 갈라지며 우화의 산통이 시작 된다. ▶▶매우 조심스럽게 몸을 위로 치켜세우며 탈피 각에서 머리를 내민 참매미는 이때부터는 애벌레의 이름을 떨쳐버리는 순간이다. ▶▶▶세웠던 몸을 뒤로 서서히 섬세하게 젖히며 탈피 각에서 빠져나오는 중간 단계의 우화 과정이다.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히고 날개가 3분의1 쯤 길어지기를 기다리며 움직이지 않고 힘을 비축 하고 안정된 휴식을 취한다.  
 새우등처럼 윗몸 일켰다 굽혔다 수십 번 되풀이
 매미 애벌레는 땅속에서 여러 차례 허물을 벗고 자란 뒤 땅위로 나와 우화한다. 매미가 땅속과 땅위에서 얼마나 오래 지내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지내는 기간은 일본의 연구결과 등을 보면, 애매미 1~2년, 참매미 3~4년, 말매미 4~5년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이를 관찰한 연구는 이뤄진 적이 없다. 
 애벌레는 땅 표면 근처까지 굴을 뚫고 기다리다 저녁 8시께 마침내 지상으로 나온다. 어둠 속에서 느릿느릿 어설픈 동작이지만  나무를 찾아 오르기 시작한다. 목표는 발톱으로 단단하게 움켜쥘 수 있는 안정된 나무껍질이다.
 이곳에 멈춘 뒤 30여 분이 지나자 서서히 등이 부풀어 오른다. 탈피를 하는 데는 2~3시간이 걸린다. 애벌레의 탈피 시간은 개체마다 조금씩 달랐다. 
 새우등처럼 몸을 굽혀 한껏 부풀리자 탈피 각이 머리 쪽부터 세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껍질에서 윗몸을 빼내 몸을 일으켰다 굽혔다 하는 동작을 매우 조심스럽게 수십 번 몸을 떨며 되풀이했다. 오그라져 있던 날개가 3분의 1쯤 펼쳐지자 탈피 각 머리 부분을 꽉 움켜쥐고 몸을 일으켜 세워 꼬리 부분을 껍질에서 완전히 꺼낸 뒤 날개가 펼쳐지길 기다렸다. 허물을 벗는 단계마다 힘이 든 듯 동작을 멈추고 숨고르기 시간을 가졌다. 

a3.jpg » 우화 과정을 역순으로 되밟는 장면.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날개가 길어지자 혼 힘을 다해 빠른 동작으로 탈피각의 머리 부분을 꽉 움켜지고 몸을 일으켜 세우며 탈피 각에서 빠져 나온다. ▶▶탈피 각에서 빠져 나온 참매미는 탈피 각 몸통으로 이동하여 안정된 자세를 잡고 날개가 길어지기를 기다린다. ▶▶▶물기에 젖어 있는 연약한 몸이 단단해 지기를 기다리며 완벽한 매미가 되기 위해 가끔 비행을 위해 날개를 움직이며 말린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우화한 참매미. 
 허물을 갓 벗고 나온 매미는 전체적으로 색소가 없어 허옇고 날개에는 하얀빛이 돌았다. 눈에도 초점이 없어 보였다. 연약한 몸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눈이 반짝이고 날개가 꼿꼿하게 펴지는 데는 10시간이나 걸렸다. 애벌레가 땅위로 나와 완벽한 매미의 모습을 갖추는데 12~13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우화하고 남은 탈피 각은 애벌레가 탈피할 때 나무껍질을 꽉 잡는 지지대 구실을 해 성충이 빠져나오기 좋게 해 준다. 또 몸이 마르고 굳어 날 때까지 의지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나무 위에 붙어 있는 흔히 보는 탈피 각은 매미 애벌레가 나무껍질을 꽉 움켜쥐고 매미로 탄생한 기나긴 ‘산통’의 징표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또하나의 예술 다중촬영  이렇게
ISO 1000 이하로 하고 셔터속도 1.5초 안 넘도록
애벌레 숨고르기 순간 틈타 눈에 초점 맞춰 ‘찰칵’

z1.jpg » 참매미 우화 과정 7회 다중촬영 장면. 
 매미 유충이 성체로 탄생하는 모습을 다중촬영(하나의 필름 프레임에 여러 번 촬영을 하는 기법) 하려면 오랜 인내와 연속성, 흔들림 없는 자리 고정, 그리고 애벌레의 탈피 순서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화 과정은 일정한 순서가 있어 머릿속에서 탈피 과정을 그려보거나. 종이에 직접 과정을 그려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장소는 야산보다 공원을 선택하는 것이 편리하다. 공원엔 가로등이 있어 부족한 빛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기도 한다. 촬영에 앞서 다중촬영 조건에 맞는 애벌레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다 보니 빛이 부족해 노출 확보가 어려운 것이 문제지만 필름의 감도를 높여 대응한다. 조명이나 플래시를 잘못 사용하면 그림자나 노출 과다 현상이 발생해 사진을 망칠 수 있다. 노출 감도(ISO)는 1000이 넘지 않도록 한다. 너무 감도 수치를 올려 촬영하면 노이즈 현상이 발생해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없다. 

z2.jpg » 참매미 우화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김포시 사우공원. 
 애벌레가 숨을 고르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잠시 쉬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 촬영한다. 이때 셔터 속도가 1.5초가 넘지 않도록 한다. 셔터 속도가 더 느려지면 우화가 시작된 애벌레 자체의 흔들림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얻기 힘들다.
 긴 노출을 주기 때문에 튼튼한 삼각대와 릴리즈 사용은 필수적이다. 초점을 맞추고 촬영할 때마다 카메라의 미러를 미리 올려 카메라 자체의 진동을 줄여야 한다.
 우화가 진행되면서 애벌레가 카메라 초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춰가며 촬영을 한다. 이때 애벌레 눈에 초점을 맞춰 촬영하는 것도 요령이다.
 애벌레가 앉은 자리는 다중 촬영을 위해 뒤 배경이 어두울수록 좋다. 우화 순서에 따라 5장면 혹은 8장면 다중촬영 숫자를 정하고 구도를 미리 계산한 뒤 촬영을 한다. 촬영 후 모니터를 보며 애벌레의 우화 과정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요령이다.
 촬영 중에 다른 애벌레가 탈피 각 위에 올라와 방해를 하기도 하고, 애벌에의 탈피 각도가 벗어나는 일도 있다. 촬영 도중 차량 불빛이 들어와 탈피 순서를 놓치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고양이가 탈피하던 애벌레를 채가는  등 여러 가지 돌발적인 일도 대비해야 한다. 
 매미 우화 다중촬영은 밤을 며칠씩 꼬박 새야 하는 고된 일이다. 거듭된 실패를 각오해야 한다. 필자도 8월3일 다중촬영을 시작해 15일 만에야 원하던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출처;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