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민족가수 배호(1942∼1971.본명 배신웅) 는
한(恨)의 정(情)이 담긴 노래를 가장 좋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불렀다는 평가를 받는 가수이다..
''마지막 잎새'' 노래비는 작사가 정귀문(정문) 선생의 고향이자 현재 거처이기도 한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저수지 소공원에 건립되었다.
이노래비는 가수 배호의 영.호남 팬클럽의 성금으로
경주시에서 부지를 제공받아 2003년 6월 22일 노래비가 제막되었다.
▲ ''마지막 잎새'' 노래비 가는 길
작사가 정귀문씨
▲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를 찾아 그 시절 그 추억을 반추하며 ''마지막 잎새'' 불러 보는 작사가 정귀문 선생 .정귀문씨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현곡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고향(경주시 현곡면 하구3리 1057번지)을 떠난적이 없이 지금껏 고향마을을 지키며 고향을 소재로 서정적(抒情的)인 노랫말을 만드는 진정 대한민국 가요 창작인으로, 제12회 한국가요 창작인 공로대상(1998 ), 제6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1999)을 수상하였다.
▲ ''마지막 잎새'' 노래의 탄생지인 현곡초등학교
▲ ''마지막 잎새'' 노래의 탄생지인 현곡초등학교 플라타너스 나무를 찾아 감회에 젖는 정귀문 선생.
바람 한 점없이 달빛만 싸늘한 1970년 어느 가을 밤.
현곡초등학교 돌담장을 지나든 문학청년 정귀남은 흐느적대며 떨어지는 손바닥만한 플라타너스 낙엽 한장을 무심코 잡아든다.당시 현곡초등학교 담장가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담장넘어로 가지를 길게 뻗어 늦가을이면 수 많은 낙엽을 흩날렸다.
알싸한 밤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맴도는 마지막 입새를 잡은 정기문은 불현듯 소년기 때 이별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사무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낙엽이 곧 자신의 분신 인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 친구란, 까가머리 소년시절 한살 아래의 현곡국민하교(당시교명) 교장선선생님의 딸이었다. 그 소녀와 친구로 지내든 정기문은 첫사랑의 속알이를 엄청했었다.세월은 흘러도 그 소녀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 그 소녀의 생각에, 그 옛날 뛰놀던 플라타너스 교정을 터벅터벅 걸으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다. 좋아한다 말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그 소녀에 대한 심경을 문학 청년 정귀문이 가다듬은 노랫말이 바로 ''마지막 잎새''이다.
배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마지막 잎새''를 부르다 무대에서 쓰러졌다. 그가 떠난 71년11월은 미처 떨어지지 않은 가로수의 낙엽까지도 슬픔에 하나둘씩 사그러 들었고, 팬들은 그의 타계를 슬퍼하고 애도하였다.
북잽이 무명가수로 출발하여 생을 마감때까지 투병(신장염)으로 사투를 반복했던 배호의 데뷔곡은 ''굿바이(63년)'',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인 ''마지막 잎새''와 ''영시의 이별''이 유작이 되었다. 배호는 이상하게도 노랫말처럼 파란낙엽되어 2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마지막 잎새''를 한(恨)이 맺히게 마지막 노래로 목메어 부르고 배호가 타계했다는 비보를 작사가 정귀문씨는 고향마을 하구리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다가 접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배호의 기일(11.7)이면 깊은 생각에 빠진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마지막 잎새'' 제목 처럼 마지막 노래가 되어 팬들의 살려내라는 항의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출처;조선일보,포토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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